
[4월에 눈이 내리는 서울에서]
4월에도 기온이 좀처럼 내려가질 않는다. 눈이 쏟아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 챙챙하고 맑다.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한다. “정말 이상기후야.” 기후 변화를 모두 느끼고 있다.
추워지면 겨울옷을 입고 전기장판을 키고, 더워지면 옷을 벗고 에어컨을 킨다. 신기하게도, 나라는 유기체는 여러 문물의 도움을 받은채 기후 변화의 영향을 입지 않은 채로 유지된다.
나에게 기후 변화는 존재하지 않다보니 기후 변화에 불감해진다. 창 밖 날씨가 어떻든 보일러와 에어컨이 있는 내 집 안에서는 안전하다.
이런 생각은 과거에도 있었다. ”1896년 온실효과를 설명하는 추정치를 처음으로 내놓은 스반테 아레니우스조차 기후변화를 걱정하지 않으며 설령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 난다고 해도 그 효과는 자신들의 먼 후손에게나 미칠거라고 예상했다. (p.175)“
25년 3월에는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 산불이 일어났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이라고 한다. 개인의 잘못이 트리거가 되었겠지만 평년보다 낮은 강수량과 높아진 기온, 낮아진 습도가 산불의 확산을 가속시켰다. 비단 한국의 문제가 아니다. LA 에서도 큰 화재가 있었다. 24년 여름에 미국 서부에는 끔찍한 폭염이 몰아닥쳤다.
기후 변화로 삶이 위협받는 건 후손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임을 알아야한다. 이 책은 기후 변화 중에서도 폭염에 집중한다. 폭염은 어떻게 우리를 죽일 것인가. 이 책의 원제에 따르면, 당신을 먼저 죽일 것이다. (The Heat Will Kill You First)
[실내 온도는 새로운 계급이다]
도시들이 점점 커지고 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기온은 계층, 재산, 그리고 종종 인종을 가르는 지표가 될 것이다. 에어컨으로 결계를 치고 오싹한 한기를 즐기는 이와 46도에 육박하는 7월 오후에 속수무책으로 익어가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다. 마치 온도 격리정책이라도 시행된 듯이.(p.112)
저자는 폭염으로 고통받는 다양한 인물을 직접 취재하고 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인도에 사는 안잘라이는 8.6평짜리 집에서 17살 딸과 남편과 셋이서 산다. 깔끔한 방이지만 가진것은 많이 없다. 날이 점점 더워질 수록 점점 이 집에서 생활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에어컨을 사는건 불가능하다. 단순히 돈이 부족해서다.
폭염은 죽음을 초래한다. 기온이 41.6도까지 치솟은 2018년 애리조나 전기 회사는 전기료를 미납한 가구의 전기를 끊었다. 그리고 그 중 한 가구의 거주민들은 열 노출로 인해 사망했다. 미납된 금액은 51달러였다.
애리조나주정부는 그 후 더운 여름날에는 함부로 전기를 끊지 못하게 규제했다. “하지만 죽음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단순히 이런 차원에만 그치지 않난다. 온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세상에서 개발 도상국 도시들의 미래에 대한 더욱 중대차한 문제가 남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정말로 정의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했다고 할 수 있을까. (p.133)”
[빙하가 놓으면 질병이 탄생한다]
“북극은 지구의 나머지 지역보다 온난화가 4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탁 트인 대양과 개활지가 더 많은 열을 흡수하게 된 것이 원인의 하나다. 빙하는 무척 훌륭한 반사체이기 때문에 햇빛을 튕겨내고 자신의 온도를 낮게 유지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많이 녹아 없어지면서 열을 흡수하는 땅과 물이 그대로 햇빛에 노출되었고, 그 바람에 빙하는 더욱 빨리 녹게 된다.” (p.189)
“북극의 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는 속도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고, 이 때문에 조만간 엄청난 양의 메탄이 방출될 것이다. 인류에게 닥칠 기후 재앙을 이야기할 때 과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가 바로 이것이다. 더구나 북극의 영구동토층에 단지 메탄가스와 털매머드의 뼈만 갇혀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문제다. 예전에 살던 바이러스와 병원체들도 갇혀 있다. 빌 게이츠도 영구동토층이 녹아 병원체들이 풀려날 생각을 하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된다고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p.432)
기후 변화가 정확히 우리에게 어떤 악영향을 가져오는지 체감이 안된다면 수백배 강력한 코로나19를 생각해보자. 새로운 전염병의 확산도 폭염에 의해 초래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진다.
[제안-새로운 도시 디자인]
작가는 과학자가 아닌 전문 기자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라 그런지 낙관주의를 잃지 않는다. 이 책 어디가 낙관주의냐고 할 사람도 있겠다. 그래도 작가는 폭염을 견디기 위한 제안이라도 한다. 새로운 도시 디자인이다. 에어컨이 없던 과거에는 통창으로 바람이 순환될 수 있도록 건물을 설계했다. 하지만 에어컨이 중심이 된 요즘 건물은 열을 차단하고 밀폐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이런 설계는 에어컨의 의존성을 더욱 높이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에어컨은 절대 냉방 기술이 아니다. 에어컨은 당순히 열기의 위치를 바꿔주는 도구일 뿐이다. (p.345)”
[총평]
주로 폭염이 미치는 영향을 다루지만 열의 원리와 인간의 진화 과정까지 포괄하는 박식한 과학책이다.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숫자로만 보이는 기후 변화를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한다. 지구의 온도는 오르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죽이고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500페이지가 필요하다. 위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위를 보게 하기 위한 노력이 절절하다. 개인 차원에서도 환경 파괴를 줄이자는 다짐을 했다. 이 한 마디를 치면서 내 의미와 의지가 저자에 비해 너무 약한 것 같아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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