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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2025

도둑맞은 집중력(2023)

by 방황하는물고기 2025. 1. 13.



[내 탓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집중력을 통제와 의지의 문제로 좁힌다.

오래전부터 나는 집중이 안 될 때마다 화를 내며 스스로를 탓했다. 넌 게을러, 자제력이 없어 (p.25)


그래. 결정은 개인이 한다. 누가 칼들고 협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가 사람들의 통제력과 의지력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키고 있으면 어떨까?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걸까, 사회에게 있는걸까?
‘도둑맞은 집중력’은 전적으로 사회의 탓이라고 주장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가장 큰 사회적 요인은 테크 기업들의 중독적인 제품 디자인이다.
집중력 파괴는 테크 기업의 사업 모델이다. 정통적인 물류 서비스와는 다르다. 소비자들의 시간이 재원이며 그들이 제품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할수록 광고 수입은 늘어난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마샬 맥루언의 말처럼 미디어의 모양 자체가 사회에 주는 영향력은 크다.

두 번째로, 줄어든 수면 시간도 집중력 저하의 원인이다.
잠을 적게 자는 것이 칭송받는 사회적 분위기는 어디에나 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커피를 5잔씩 마시며 여러 업무를 처리하고 밤 12시에 잠자리에 드는 모습은 신의 삶, 갓 생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수면 시간은 집중력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좀비처럼 긴 시간을 살아있는 것을 추앙할 필요는 없다.

세 번째로, 가공 식품또한 우리의 두뇌 활동에 나쁜 영향을 준다.

네 번째로, adhd같은 병명으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그만둔다.

자신의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말은 듣기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모는 그 메시지와 함께 여러 긍정적인 메시지도 듣게된다. 당신 자식의 행동은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사실 당신은 연민을 받아 마땅합니다. (p.339)


굉장히 흥미로운 주장이었다. 질병은 문제를 개인의 영역에서 다른 차원의 영역으로 끌어 당기는 요소 중에 하나다.

이 책은 adhd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과도한 오진단을 거부한다.
감기가 걸려서 병원에 갔더니 알약 한 무더기를 줄 필요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육장에서 고통받는 말들에게 항정신 약물을 주입시키는 사례를 언급하는데, 생각할 거리가 많다. 현실은 바꿀수 없으니 눈가리고 아웅이라도 하자는 논지도 이해가 간다.

“제 말은, 현실은 선택이 아니라는 겁니다. 현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거예요. 그러니 지금 가진 것 안에서 노력해야 해요.” (p.346)



동물이나 인간이나 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을 바에는 고통이라도 없애는 것이 차악이 아닐까?

하지만 옳은 답은 현실을 바꾸는 것이 맞다. 공감한다.
책에서는 가난한 동네에서 adhd 진단을 받아 투약중인 아이들에게 정신적인 테라피와 교육을 제공했더니
약을 줄이고도 본인의 흥미와 소질을 개발한 실제 사례들을 언급한다. 이게 현실을 바꾼 바람직한 사례일거다.

다섯 번째로, 아이들을 과보호하여 키우는 문화가 아이들의 집중력 저하를 초래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급진적인 주장이다. 우리가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핸드폰 없이도 아이들끼리 놀이터와 공터에서 삼삼오오 모여 뛰놀았다.
요즘은 부모가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저출산도 그 요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은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서 사회화 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두뇌 발달에 있어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책이 주는 교훈]
2021년도쯤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읽었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도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되는 책이다.
그 책은 미디어가 어떻게 사람들을 덜 생각하고 더 중독되게 하는지 설파한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한 꼭지를 깊게 판 책이라고 보면 된다. 내가 테크 기업들과 CRM 업무에 도덕적인 회의를 느끼게 한 중요한 책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읽었을 때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책은 집중력을 되찾기위해 어떤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지 까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펼치기 때문에, 동기 부여도 된다.
물론 저자의 주장의 신빙성을 더하기 위한 통계적 자료들이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애매하고 깊이가 없는 언급들인 경우도 있다.
저자의 말을 100프로 맹신하긴 논리적으로도 어렵지만, 진보적인 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가장 인상 깊은 건 테크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집중력을 해치게 앱을 디자인하는 걸 법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비 시간의 획기적인 상승을 이끈 ‘무한 새로고침’ 기능이 법적으로 금지된다고 상상해보니, 테크 기업에게는 절망 일반 시민들에게는 축복이겠더라.

과거에 흔히 사용되던 납 페인트가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결과가 있자 전국적인 움직임이 납이 들어간 페인트 생산을 중단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건강에 해를 끼치는 제품을 아무 제약 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건 지금으로써는 상상치 못할 일이다.
하지만 테크 기업의 중독적인 모델이 우리의 생각 능력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심해진다.

두 개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테크 기업들도 건강에 해를 끼치는 제품군으로 분류하고 제약을 거는 게 맞지 않나?

[나에게 바뀐점]

딴 생각을 할 때 우리의 정신은 서로 다른 것들을 새로 연결하기 시작하며, 종종 이 과정에서 문제의 해결책이 떠오른다. (p.148)

이 책을 읽고 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멍하니 창 밖을 보거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내버려 두는 걸 의식적으로 좋아하게 됐다.
정말 오랜만에 멍 때리다가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 일도 있었다. 중학생 때로 돌아간 것 처럼 마음이 들뜨더라.

약 1년전에 창의력이 쇠퇴한 것 같다고 일기를 썼었다. 아이디어가 마구 넘쳐 흘러 콘티가 술술 그려지던 감각이 생생한데,
작년에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억지로 머리를 짜내야 했다.

당시에는 내가 늙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생활 습관의 문제였던 것 같다. 5~10년 사이에 스마트폰은 진화했고 테크 기업들은 더 교묘해졌다.  
머리에 휴식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스포트라이트 빛만을 갈구하던 내 사고 방식이 창의력을 막았다.

사회가 의도적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결국 또 자신의 의지와 통제의 영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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