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리의 전개가 단순하고 쉽다]
아들러의 사상을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작품에 나오는 철학자는 지은이 중 한 명인 기시미 이치로의 페르소나다. 책은 전달하고 싶은 주장을 어려운 말이나 복잡한 사고 없이 쉽고 간단하고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경험에 의존한 설명이 많고 사변적이지 않다. 그러다보니 비유가 많고, 논리의 전개가 단순하다. 예를 들면 '어떤 상황에 대한 내 설명이 그럴듯하니 그것은 진리이다' 라는 식이다. 헤겔의 정-반-합의 논리 구조를 통해 주장의 타당성을 확립하려 하지만 반의 역할을 맡은 청년이 애초부터 작가에게 우호적이다 보니 마지막에는 '당신 말이 듣고보니 다 맞다'는 식으로 허무하게 본인의 역할을 내려놓는다.
철학책보다는 자기계발서의 느낌이 강하다. 전달하고 싶은 주제를 숟가락에 듬뿍 담아 떠먹여준다. 독자는 그럴듯한 비유와 사례들을 보고 그 주장을 입에 가득 삼킨 채 고개를 끄덕하고 꿀꺽 삼키면 된다. 이 책이 10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게 이해가 된다. 삶의 지침을 철학의 힘을 빌려 명료하게 내려준다.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처방전처럼 먹기 좋다.
너진똑 유튜브에서 "미움받을 용기 까는 영상"을 봤다. 작품에서 아들러의 철학이라고 설명하는 내용들은 실제 아들러가 주창한 내용이 아니란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si=OhVtZFHS6hyukNix&v=IZae5vyhHGI&feature=youtu.be
그래, 맞는 말이야. 유명한 철학자는 역시 다르구나. 라는 생각하던 내가 얄팍해보였다.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명성에 눈이 멀어 주어진 말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게 되는구나.
책에 3점을 줬다. 유명 철학자의 후광을 빼고서라도 각 파트에서 내가 취한 것이 있다.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책에서는 행동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지 말라고 한다. 다만 사람은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럴 뿐이다. 예를 들어 적면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적면공포증을 핑계로 삼기 위해 적면공포증을 유지한다. 적면긍포증을 극복할 생각이 없어서 적면공포증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득이 되는 '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교수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최선의 선택을 내린다." 언뜻 일맥상통하는 주장 같았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교수님은 내가 내리는 선택에 포커스를 맞춘 반면 책은 내가 느끼는 감정까지 의지의 문제로 치환하고 있다. 우울증도 의지의 문제, 비행도 의지의 문제, 장애도 의지의 문제.
불행한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는 말일 수 있겠다. 내 마음과 상황에 대한 개선의 가능성을 나로 돌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내 마음먹기 달렸다! 하지만 실상은 그 사람이 겪은 상황을 부정하는 잔인한 말이다. 상처는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는 것이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무인도에 떨어져도 윌슨이라는 가상의 존재와 관계를 구축하는 게 인간이다. 일을 하기 싫다는 감각은 일 자체보다 일에서 초래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올 때가 많다. 이처럼 인간은 관계를 갈망하면서 힘들어한다.
우물 내 물의 온도는 항상 18도라고 한다. 하여름엔 차갑고 겨울엔 따뜻하게 느껴진다. 인간관계도 주관적이다. 열처럼 어느 지점은 조금이라도 더 뜨겁기 마련이다. 관계에는 비대칭이 존재하기에 관계 속에서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 건 불가하다.
열등감은 나쁜 게 아니지만, 열등 콤플렉스는 조심해야 한다. "열등 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이다." (p.94) 열등 콤플렉스는 우월 콤플렉스로 발전하기도 한다. 심한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보완할 용기가 없는 열등 콤플렉스는 못난 나를 보상하기 위해 나의 다른 면모를 지나치게 과시하려 하게 된다.
책은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p.105) 이라고 한다.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자신에게만 집중하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같았다.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버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타인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내게 어떤 역할을 바라는지 판단하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인간은 불행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제를 분리해야 한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과 타인의 감정과 관련된 영역을 분리한다. 냉정하게 선을 긋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다." (p.187)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나는 이런 말이 위로가 됐다. 타인과 나를 분리하는 삶은 불가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자세를 때때로 되새기는 건 좋을 것 같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이동진의 삶의 모토와 닮은 내용이었다. 삶은 선이 아니라 점이다. 점들이 이어지고 연속되어 완성된다. 우리는 작은 점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철학적으로는 키네시스적 인생보다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을 추구하라고 표현할 수 있다. 키네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운동'을 말한다. 어떠한 가능성이 있는 사물이 목적을 완전히 실현한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정해진 목적을 향해 가는 운동이다. 반면 에네르게이아란 '실현해가는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실행되고 있는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그 자체로 완전한 가치를 가진다. (p.304)
책에서는 또한 '자기긍정'과 '자기수용'이라는 개념을 가져온다. 자기긍정은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강하다'라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과한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자칫하면 우월 콤플렉스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자기수용은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60점짜리 나를 100점으로 속일 필요 없이 60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자기수용이다. (p.260) 책은 '평범해질 용기'를 내라고 한다. (p.297) 우연히 접한 아래 블로그 글이 떠올랐다.
https://blog.naver.com/cr2875/223946407971
인간은 모두 평균적으로 50점에 수렴한다는 주장이다.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를 아무리 아끼고 좋아해도 50점이고, 남을 아무리 사랑하고 증오해도 50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타인에 대한 증오나 환상, 나에 대한 열등감과 우월감이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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