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도 예술이야?]
나는 현대 미술을 좋아한다. 고전 미술은 테크닉에 중점을 둔 반면 현대 미술은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 어떤 메시지가 담겼는지 생각하게 된다. 작품에 들어간 노동 강도가 그 파급력에 비례하지는 않다보니, "이것도 예술이야?" 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좋은 작품이야?" 더 어려운 질문이다. 정교한 붓터치, 정확한 모사, 풍성한 색채, 완벽한 비례와 같은 객관적 잣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기술로 평가할 수 없다면 좋은 예술을 판단하는 기준은 뭘까? 현대 예술은 대중에게 어렵다. 벽에 붙은 바나나가 87억이라는 생각에 누가 고개를 주억일까. 작가도 같은 고민을 했다. 예술계는 어떤 기준으로 좋은 예술을 판단하고 있는걸까? 우리는 좋은 예술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현대 예술계의 비평가들은 암호로 글을 쓴다. (예를 들어 '작가 신체에 의한 지표적 기호'는 쉽게 말하면 '손가락으로 칠한 그림'이란 뜻이다). 대중을 따돌리는 느낌이다. 작가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예술계로 뛰어들었다. 이 책은 그의 몇 개월간의 일대기를 담은 탐사보도 책이다.
[명품과 가십을 휘두른 예술 생태계]
작가는 먼저 갤러리 알바로 취직을 한다. 그곳은 예술계의 부조리함과 어리석음의 집합체였다. 작품 자체보다 그 작품과 작가를 휩싼 맥락으로 작품이 평가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작가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 어느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는가, 누가 전시 평론을 썼는가, 인스타그램 팔로워 중엔 누가 있는가, 성애가 어떻게 되는가, ... 내가 작품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부차적인 소음들이 사실은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였다. (p.106)
누가 예술계가 좁다고 그랬는가? 예술계는 점이었다. 예술계에서 성공하려면 핵심 인물과의 커넥션이 어떻게든 있어야 했다. 명품과 가십으로 작품이 평가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알맹이가 없다면 대중이 현대 미술을 무시하는 것도 놀랄일도 아니다.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은 노동이다]
작가는 우연한 기회로 줄리 커티스라는 작가의 작업실에 가게 된다. 작품 자체에 몰입하여 빠져드는 줄리를 보며 작가는 무릎을 탁 친다. 비록 예술계는 명품과 가십으로 뒤덮여있지만, 작가의 노동은 살아있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보며 작품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작품은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캔버스를 고를지, 어떤 붓을 사용할지, 어떤 방법으로 색을 낼지 수천가지의 고심이 담겨있다.
예술 작품은 마법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 우리는 예술이 노동의 일종의 하나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아이디어는 그림이 아니에요." 줄리는 말 그대로 캔버스에 코를 박고 그림을 그리면서 말했다. (p.126)
따라서 예술을 접하는 사람도 그 노동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줄리는 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인상 깊은 다섯 가지 포인트를 잡아서 집중하라고 한다. 손톱 길이가 묘하다, 배경의 색이 미묘하다, 어떤 것이든 좋다. 작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다. 그러면 작가가 거쳤던 수천가지의 고민이 내재화된다.
인간이라는 종은 오랫동안 색깔을 위한 수많은 위험과 비용을 감수했다. 망고잎을 먹여 소를 죽인 뒤 그 오줌으로 얻은 노란색을 사용하고, 미라로 안료를 만들었다. 울트라 마린의 원료인 청금석은 르네상스 시대때 황금보다 비쌌다. (p.336)

(어떤) 예술가란 그런 사람들이다. 작품에 맞는 하나의 예쁜 색을 찾기 위해 미친짓을 자행한다. 이 사실을 알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다시 보면 작품에 담긴 노고가 울트라마린 하나만으로도 보여진다.
[컬렉터는 뭐하는 사람인가?]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는 본인뿐만 아니라 작가에게도 도움이 된다. 어떤 컬렉터가 구매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급등한다. 하지만 컬렉터는 온전히 예술가를 지원하는 순수한 목적만으로 작품을 구매하지는 않는다. 재태크를 위해서도 구매하고, 본인의 특별함을 과시하기 위해 구매하기도 한다. 하지만 컬렉터가 예술계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축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부르디와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기가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를 차별화하려고 하며, 그래서 예술 작품 수집은 헤어스타일이나 바지 길이처럼 유행을 따른다. (p.173)
예술을 수집하는 컬렉터들에게 예술 활동은 사회 활동이다. 친구를 사귀고 감탄의 대상이 되는 방법이다.
[예상 여과기를 파괴하라]
우리는 눈이 주변의 장면을 비디오카메라처럼 무감정하고 정확하게 기록한다고 믿고 싶겠지만 눈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렇게 작동할 수가 없다. 입력되는 데이터부터가 열악하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대부분이 흐릿하고 겨우 일부분만 또렷하다. (p.325) 우리는 뇌가 이해하기 쉽게 현실을 왜곡하고 무마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추구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방에서 계속해서 바뀌는 색의 특질을 거의 환각처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망막에 들어온 시각 데이터는 리베카의 표현으로 '예상 여과기'를 거친다. 전체 그림을 이해하기도 전에 뇌가 일차적으로 이 여과기를 이용해 원시 데이터를 기각하고 묵살하고 정리하고 분류하고 순위화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무엇을 보게 될지를 뇌가 먼저 예상하고 우리는 그 예상에 따라 무언가를 본다고 생각하게 된다." (p325)
예술은 그런 현실에 나타난 버그다. 예상에 어긋나는 의아함과 엉뚱함. '이것도 예술이야?'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것 자체가 훌륭한 예술일 수도 있다.
"새로운 일을 경험할 때는 시간이 살짝 느리게 가니까요. 우리가 여행을 가면 모든 게 새롭고 자신이 너무나 젊게 느껴지잖아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관점, 새로운 자기 이해로 활기를 되찾고요." (p.314)
[예술에 최선은 없다. 상호작용이다.]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이 쉽게 읽기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서양예술사'를 독파하라고 하지 않는다. 예술에 최선은 없다. 탑 미술관의 큐레이터들도 직감으로 작품을 고른다. 하지만 예술은 상호 작용이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작품을 해석할 수 있다. 작품에 담긴 고군분투를 느끼고, 거기서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나에게 충격을 줄 수록 좋은 예술일 수 있다. 내가 소중히 지니고 있는 예상 여과기를 거침없이 파괴하니까 말이다. 작가에게는 그런 예술이 퍼포먼스 아티스트 어맨다의 온라인 페르소나인 '맨디 올파이어' 였다.

디시나예케는 예술이라는 단어는 쓸데없이 모호하기에 아예 쓰지 말자고 주장한다. 그는 예술이 사물이 아닌 행동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 예술가는 반복하고, 과장하고, 정교화하고, 예상을 배반한다. 브레이킹 댄스, 다도, 게임도 모두 예술이다. (p.249)
취향은 그때그때 쉽게 만들어지고, 또 언제나 변화한다. 자신이 단 하나의 정답을 이미 찾아냈다고 믿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부단히 질문을 던지는 쪽이 더 성실한 태도다. 그럼에도 여전히 '훌륭한' 예술이라는 관념을 믿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레코, 고흐, 세잔 등 살아생전에는 무능력자로 여겨졌던 수많은 화가를 기억하라.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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