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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2025

페미사냥(2024)⭐️⭐️⭐️⭐️

by 방황하는물고기 2025. 10. 4.



[특명. 페미니스트임을 숨겨라]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메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부상으로 뭇 한국 여성들에게 페미니즘 물결이 일었다. 바야흐로 페미니즘 대중화의 시대였다. 그 때는 ‘나도 페미니스트다’ 라는 주장이 멋이었고 대세였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규범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화가 줄고 세상과 타협할 일이 많아져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모른척 하려했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를 상기시켜준다. 바로 눈치이다. 사회에 섞이려면 페미니스트임을 숨겨라.

[페미사냥이란 무엇인가?]
서브 컬쳐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래 두 가지 사건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2016년 넥슨 성우 교체 사건과 2024년 메이플 스토리 집게손 사건 일러스트 교체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캐릭터 혹은 캐릭터에 연관된 창작자가 메갈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어 기업이 콘텐츠를 전면 수정했다.
이민주 작가는 이러한 ‘여성 개개인과 페미(메갈)의 연관성을 색출 및 공론화하고, 페미(메갈)를 시장에서 퇴출할 것을 기업에 요구하는 소비자 행동주의(p.16)’를 페미사냥으로 정의한다. 작가는 페미사냥이 시장의 성차별적 젠더 구조를 드러내며, 신자유주의 통치성 하에서 심화된다고 본다. 그리고 페미사냥은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페미니스트 운동에 대한 백래시임을 주장한다. 페미사냥은 ‘노동 시장과 소비 시장에서 여성과 페미니스트를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검열하는 폭력을 정당화한다.(p.19)’

[페미사냥은 기업이 완성한다]
작가는 페미사냥이 소위 ‘하남자’만 일으키는 일이 아님을 경고한다. 페미사냥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기득권층의 수용이 필요하다. 가상세계에 매달리는 변태들의 칭얼거림으로 가볍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기업은 경제적 가치에 따른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며, 소비자 지향 경영과 이윤 추구를 위해 메갈 색출을 수용하는 기업의 결정은 필연적이다. (p.46)’ 라는 논리로 기업의 행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메이플 스토리 일러스트의 집게손이 극단적 페미니즘을 뜻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사내 엘레베이터에서 모르는 남성분들이 이 사건을 언급하며 어이없어하던 것도 목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러스트는 수정되었다. 근거가 없을지라도 논란 될 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조심하기로 결정한다. 이윤을 위해 기업은 페미사냥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논리는 언뜻 타당해보인다. 이렇게 기업이 페미사냥을 수용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은 젠더 정치와 민주적 권리의 문제가 아닌 시장 거래의 문제로 바뀐다.(p.121)‘

[페미사냥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넥슨 집게손 사태에 대해 이상헌 전 국회의원은 ‘이 일로 한시로 쉬지 못하고 근무 중인 게임사 직원분들…고생 많으시단 위로의 말씀 전합니다’ 라는 말을 했다. 젠더 정치에서의 위치를 드러낼 위험 부담 없이 중립을 주장하면서도 피해자에게 공감한다는 구실로 도덕적 정당성을 취한다. (p.124) 안온한 선택이다. 여성학자 민가영은 젠더 폭력 문제에서 개별 피해 사실과 구제만이 강조될 때 성차별이라는 피해의 구조적 원인이 논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p.120) 이런 담론은 페미사냥의 뿌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이 소외받은 남자들의 생떼든, 실제로 극단적 페미니즘을 도모하는 집단에 맞서는 운동이든 상관 없다. 여기서의 피해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이며 기업과 정치의 목적은 이 피해자들을 하루빨리 구제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페미사냥의 소비자가 공격하려는 곳은 어디일까? 작가는 페미사냥이 정치적 소비자운동이 아님을 강조한다. 정치적 소비자운동은 ’기업에 사회적/윤리적 책임을 요구하고자 하는 소비자가 모인 행동이다. (p.99)’ 반면 페미사냥의 소비자들은 기업을 자신과 같은 피해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남성 소비자의 항의는 소비자 대 기업의 구도가 아닌, 남성으로 표상되는 게임계 대 외부자 페미 여성의 대립 구도로 조직되었다. (P.104)’  실제적인 피해자는 페미니즘을 검열받아야 하는 모든 이들이다. 이러한 낙인찍기 정치는 페미니즘 운동의 확산을 억제한다. ‘비합리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집닥적 낙인찍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페미사냥이 문제 삼고 공격하는 대상은 남성의 심기를 거스르고 그들의 주도권을 넘본다고 여겨지는 여성과 소수자라는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p.176)’ 작가는 ’사냥에 다시 저항하려면 굴하지 않고 다시 말하는 수밖에 없다.(p.177)’고 말한다.

[놀이터에 모두를 초대하자]
디시를 비롯한 커뮤니티와 인터넷 하위문화가 남성만의 놀이터가 아님에도 여성 소비자의 존재는 간첩처럼 여겨지고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 여성들은 늘 같은 놀이터에 있었다. 작가는 대표적인 화합의 온라인 놀이의 예시로 ’자캐커뮤’를 든다. 실제로 ‘자캐커뮤’에 빠져 살았던 10대 후반~20대 초반을 생각해보니 공감이 갔다. 우리는 그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모두를 끼워주려 했다.

여성학 연구자 이리예는 여성 오타쿠가 주로 즐기는 문화인 ’자캐커뮤‘의 현장을 분석하면서 여성들이 관계적 이야기를 통해 독창적 즐거움을 만들고 있음을 밝혔다. 각자가 만든 캐릭터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인 여성 오타쿠들은 ’자캐‘를 통해 대화하고 무수한 관계성을 맺으면서 예상치 못한 서사를 만든다. 이들은 여기서만 만들 수 있는 독특한 즐거움을 알고 좇는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록 더 광대한 이야기가 가능하고, 그로부터 한층 복잡다단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기꺼이 놀이터에 초대하려 한다. 또 누군가 상처받고 놀이터를 떠나거나 무리에 못 끼는 일이 없도록 규칙을 만들고 놀이터의 환경을 살핀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즐거움이야말로 가상의 놀이터뿐만 아니라 그와 연결된 현실을 풍요롭게 하고, 초대된 이들이 유쾌함 속에 힘내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리라. (P.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