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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2025

법앞의 예술(2019) 리뷰 ⭐️⭐️⭐️

by 방황하는물고기 2025. 12. 13.


[떡잎은 까맸던 저작권법]
저작권법은 창작물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초의 저작권법인 ‘앤여왕법’은 창작자가 아닌 자본가와 정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생겼다. ‘출판업자가 저자의 책을 독점적으로 출판하기 위해서는 저자로부터 인쇄에 대한 독점권을 양도받아야 했기 때문에, 먼저 저자에게 독점적 권리를 인정하고 이를 자신들이 양도받았다는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이처럼 저작권은 인쇄를 독점하는 권리, Copy Right로 탄생했다. (p.11)‘.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탄생한 법이 지금은 힘 없는 창작자를 지키기 위해 쓰인다.

[법 앞에 예술, Not 법 뒤에 예술]
사실 예술 자체가 어렵다. 어디까지가 예술인지 정의하기 위해 수백년간 철학자와 미술학자들이 싸우고 있는 판이다. 여기에 법까지 끼어들어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하니 머리가 복잡하다. 예를 들어 법에는 ’저작인격권‘이라는 게 있다. 작품에 인격이 있다는 의미이다. 누군가 허락 없이 작품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일반인이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정당하게 돈을 주고 구매한 작품을 거꾸로 전시한 경우는 어떨까? 손해가 발생했다고 설명하기 애매하고 금전적으로도 환산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 ’저작인격권‘이 탄생했다.

저자는 법이 완벽하지 않고, 법관도 실수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법은 신성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 법을 만들고 적용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p.47)



태생부터 모호한 예술과 그 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본질적인 측면과 예술가의 의도를 분석할 수밖에 없다.

사람을 고용해서 자기 그림을 완성하고 판매한 조영남 대작 사건의 경우 1심과 2심의 판결이 전혀 다르다. 1심은 “조수 사용이 작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한 요소인데 이걸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기망 행위” 라며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현대예술은 누가 그렸는지 보다 누구의 생각인지의 여부가 핵심이기 때문에 ‘친작’ 여부가 구매결정에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할 수 없어” 무죄를 선고했다.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유죄를 선고한 판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대법관이나 하신 분께 험한 말을 할 수 없고 ‘당신 대단한 실수했소’ 라고 한마디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법관에게 언제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공명정대한 판단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p.73)

법이 어떻게 예술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지 궁금했는데, 법보다도 상식과 인본주의에 기대야 한다는 저자의 철학이 느껴졌다. 전태일은 노동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노동법이 지켜지지 않았기에 분신자살을 했다. 법보다도 법을 해석하고 법이 보호하고 판결을 내리는 영역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앞으로 AI의 사용이 더 활발해지면 예술을 정의하는 건 이전보다도 더 어렵고 복잡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법이 보호하는 가치에 대한 맥락을 파악하고 실질적으로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

[패러디와 표절의 차이는 결국 깊이다]
어디까지가 패러디고 어디까지가 표절일까? 2001년 이재수가 서태지의 <컴백홈>을 패러디한 <컴배콤>을 음원으로 발표했다. 서태지는 허락받지 않은 표절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음치가 놀림받는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며 대중적으로 우상화된 인물이라도 한 인간에 불과하다(p.41)’ 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하며 이재수는 반박했다.

혹자는 ’서태지가 패러디를 모르고 속 좁게 소송을 걸었다‘ 고 하지만, 서태지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서태지의 의사와 무관하게 <컴백홈>의 사용 허가를 판매했고 이를 수익화 했기 때문에 음악의 저작권을 지키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본인의 음악을 패러디한 것에 모욕을 느껴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종내에는 고소 취하를 했다고도 한다.

https://youtu.be/_uKVgYaRuEk?si=0yhl95HX3rcQ6RYT

Lee Jae Soo - Come Back Home

Lee Jae Soo's Come Back Home music video. It's a spoof off of SeoTaeJi's Come Back Home video

www.youtube.com


https://youtu.be/ZvgcwXsHnzE?si=xGpAzdRhLuBNEjGG

이재수와 비슷하지만 대조되는 인물로 얀코빅이 있다. 그는 주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을 패러디하지만 그래미상을 4회나 수상할 만큼 실력있는 음악인이자 다른 가수에게도 존경받는 아티스트다. 얀코빅이 패러디한 노래를 들어보면 단순한 모창과는 결이 다르다. 원본 음악과 뮤직비디오가 가진 스타일을 채도만 살짝 올리듯이 절묘하게 비튼다. 패러디에도 급이 있다. 메시지가 담겨야 패러디다. 구체적인 근거를 들며 명료하게 분석하기에는 어렵지만 이재수의 패러디와 얀코빅의 패러디는 질이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책에서도 어디까지인지 모를때는 ‘작품의 본질’을 들여다보라고 한다. 유죄와 무죄가 나뉘어지는 이분법의 법 세계에서 감성과 모호함을 믿으라는 말은 자칫 아이러니하지만, 그만큼 예술과 관련된 법은 더 예술을 잘 알아야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 것 같다.

신랄한 비판을 위한 패러디나 큰 웃음을 주는 해학적 패러디.. 등 각종 패러디는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예술의 한 장르다. (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