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한 번역이 딱딱하게 된건지 원문부터 그랬던건지 따분한 문장들이라 읽기 힘들었다.
그래도 내용은 알찼다. 철학 교과서를 하나 읽은 기분이다.
이 책은 연대기 순으로 종교와 철학의 탄생 배경과 주요 사상들의 특징을 개괄한다.
과거의 철학은 앎을 향한 욕구의 총집합을 칭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학문 일반을 일컬었고, 근대에는 여러 과학 분야를 뜻했다.
궁극적으로 철학과 종교 모두 ‘나는 누구고 세계는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의 답을 내놓는 과정이고 사고 실험이다.
초기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라는 단순한 선악 이원론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논리에 따르면 청렴하게 바르고 산 이들 모두가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기각이다.
세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대 철학가들은 이런저런 이론을 내놓았다.
수많은 소년소녀 만화물의 영감이 된 4원소(불, 공기, 물, 흙) 이론도 있고 세상은 본질의 모조품으로 이루어졌다는 이데아론도 있다.
지금 들으면 허무맹랑하지만 그 때는 세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혁명적인 발상들이었을 것이다.
철학의 위대함은 비판적인 사고다.
그 관성을 의심하고 자신의 스승에 반박하는 것이 발전을 이루어낸다.
공자는 인을 중시했다. 하지만 인의 근간이 되는 인애 사상은 신분 제도를 전제로 한다.
묵자는 이 부분을 지적했다. 그는 인애가 불평등하며, 사람은 모두 평등한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이라는 사상도 겸애롭고 자비로운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부족한 점을 찾아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반박하기 위해 삼단논법을 내놓았다. 이데아는 개념상의 직감이라면 삼단논법은 논리학이다.
헤겔은 역사의 변증법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쇼펜하우어는 역사가 절대정신으로 진보를 향해서 나아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흔히 받아들여지는 기독교의 삼위일체가 과거에는 공의회를 소집할 정도로 근간을 뒤흔드는 교리였다는 것도 신기했다.
신과 예수와 성령 이 셋의 위격은 하나의 신라는 개념은 인간의 몸을 가진 신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어찌보면 신격을 인간계로 끌어들이는 파격적인 교리이다. 결국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은 이슬람교를 알아간 데 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다른 종교 기독교나 불교와 다르게 평범한 상인이었다.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종교의 창시자로서는 흔치 않은 이미지이다.
“쿠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남녀평등에 가까운 발상이 많다. 여성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사상은 결코 아니다. (P. 220).. 4명의 아내를 두는 데에는 어디까지나 네 여자를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라붙었다. 무함마드는 남존여비가 일반적이던 시대에 여성의 재산권을 인정했다. 동등하지는 않고 남성의 절반 수준이었으나 당시 유럽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었다. 그 시대의 가르침에 현대의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며 비판하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p.221)”
결국 중요한건 코란이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는 태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는 근현대 철학도 빠르게 톺아준다. 칸트는 사람이 세계의 존재물, 그 사물 자체를 영원히 포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람은 진짜 대상(object)가 아니라, 인식의 축이 포착한 현상(phenomenon)을 본다.
”칸트가 생각한 인식의 축이라는 사고방식은 현대 대뇌 생리학이 해명한 연구 성과와 일치한다. 우리의 눈으로 들어온 정보는 머릿속에서 전기 신호로 변환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빨간 꽃을 보고 “이것은 빨간 꽃이다” 라고 인식한다고 판명되었다.“ (p.324)
여기에 이어 존재가 세계를 규정하지 않고 언어가 세계를 규정한다는 소쉬르의 관점이 나왔다.
언어의 힘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게 현대 철학의 가장 큰 파문이었던 것 같다.
'책 > 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포주의] 센강의 이름모를여인 (2021) (0) | 2024.11.14 |
---|---|
나를 찾아줘(2012) (0) | 2024.11.13 |
클라우드 쿠쿠랜드(2023) (0) | 2024.09.22 |
남아 있는 나날(1989) (0) | 2024.08.18 |
퀸스갬빗(2021) (0) | 2024.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