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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2025

마르탱게르의 귀향(1982) 리뷰 ⭐️⭐️⭐️⭐️⭐️

by 방황하는물고기 2025. 12. 31.


[충격적인 중세 실화]
1556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다. 마르탱 게르는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간다. 8년 뒤 다시 돌아온 마르탱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소심했던 모습은 간 데 없고 의젓하고 믿음직스럽다. 부부관계가 소원했던 아내 베르트랑드와도 돈독해진다. 가정 생활도, 육아도, 일도 성실하게 하며 주변인들을 두루두루 챙기는 마르탱을 보며 사람들은 군대가 소년을 남자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마르탱이 귀향한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마을에 찾아온 떠돌이 무리가 그는 진짜 마르탱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은 진짜 마르탱을 본 적이 있으며 그는 전쟁에서 한 쪽 다리를 잃었어야 한다. 마르탱은 격하게 부인하지만 의심의 씨앗은 마을 전체에 조용하게 퍼진다. 마르탱이 본인 몫의 재산을 숙부에게 주장하자 숙부는 그를 법원에 진짜 마르탱이 아니라고 고발한다. 마을은 양측으로 나뉘어 그를 옹호하거나 비난한다. 책은 치열하게 결론을 향해간다. 그는 진짜 마르탱인가? 아닌가? 그가 마르탱이 아니라면 왜 사람들은 그가 마르탱이라고 하는가? 아내와 가족의 적극적인 옹호로 법원이 마르탱의 손을 들어주기 직전 의족을 단 진짜 마르탱이 등장한다. 가짜 마르탱은 본인의 죄를 인정하고 결국 교수형에 처한다.

[자유로운 사랑은 축복이다]
때로는 거짓인 걸 알면서도 눈 감는 순간이 있다. 거짓이 본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순간이다. 아내 베르트랑드는 진짜 마르탱과의 불만족스러운 속궁합, 자신을 버리고 떠난 무책임 속에서 힘들어했다. 책에서는 중세 마을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데, 남편이 없는 여자의 삶은 무시받기 십상이었다. 가짜 마르탱의 등장 이후 그녀의 삶은 풍족해졌다. 가짜 마르탱은 그녀를 존중하고 사랑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가짜 마르탱은 어느 날 베르트랑드에게 자기 이름을 쓰는 법을 알려준다. 직접 쓴 자신의 이름을 바라보며 서로 미소짓는다. 아내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법정에서 베르트랑드는 마르탱의 탄원서에 서명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며 본인이라면 이름을 썼을 것이라 한다. 숙부는 ‘너는 글씨를 쓸 줄 모르잖아!’ 라고 고함친다.

“제게 펜과 종이를 갖다주세요.” … 개중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이 또렷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베르트랑드라는 이름이. (P.180)

16세기 결혼은 신성한 제도이자 서약이었다. 불륜이나 이혼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옥죄어질 수 있을까. 베르트랑드는 불행 속에서 자유로운 사랑을 갈망했다. 고등 판사인 코라스는 베르트랑드를 의뭉스럽게 바라본다. 그녀가 남편이 아닌, 자신의 결혼 생활을 변호해야 마땅할텐데 그렇지 않아 의아해한다. 그녀는 아무 남자가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라고 확언하는 마르탱을, 그 어떤 사람보다도 그녀를 기쁘게 해주는 마르탱만을 변호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P.184) 사건이 종결된 이후 코라스는 베르트랑드를 찾아가 개인적으로 물어본다. 그를 사랑했냐고. 그녀는 사랑했다고 말한다. 코라스는 이후 개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종교적 신념 때문에 교수형을 당했다고도. 개신교는 천주교와 달리 세속적인 사랑과 자유도 높은 자유도를 용인한 것을 고려했을 때 코라스는 베르트랑드의 마음에 공감했던 것 같다.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행운이다.

그는 이제 눈을 들어 베르트랑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당신을 보게 되었소. 당신을 내 두 팔로 안게 되었소. 섣부른 짓을 후회했지만, 그땐 이미 늦은 뒤었소.” (p.220)


[스토리가 없으면 판결에 가치는 없다]
책은 가짜 마르탱-아르노와 베르트랑드간의 순수한 사랑을 암시하고 강조한다. 하지만 아르노는 고향에서는 절도, 사기를 저지른 잡법이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코라스가 실제 집필한 ‘툴루즈 고등법원의 잊을 수 없는 판결’ 이라는 수필에서는 코라스가 아르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시골뜨기에 불과한 청년의 놀라운 기억력, 카리스마는 당시의 신분 질서를 뛰어넘을만한 기개였을 것이다. 달변가인 그는 베르트랑드 어머니의 말처럼 재산을 노린 전형적인 사기꾼이었을까? 본인 몫의 재산을 챙겨 다시 아내를 버리고 떠날 생각이었을까? 알 수 없다. 그가 정말 사기꾼이었다면 그의 사형은 정의 구현이지만, 그가 베르트랑드와 가족을 위한 성실한 의붓아버지였다면 비극적인 판결이다. 마르탱 게르 사건은 ‘법이나 지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모순성과 삶의 불가해함, 사실을 넘어선 진실의 문제’를 제기한다.(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