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2026

겨울꿈(1922~) 리뷰 ⭐️⭐️⭐️⭐️

방황하는물고기 2026. 4. 8. 18:18

 

[순수재미 GOAT] 

피츠제랄드의 단편 소설 다섯 편을 엮은 책이다. 순수재미 GOAT다. 재밌어서 후루룩 읽게 되는 것이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가 떠올랐다. 100년 전에 쓰인 책이라 지금 보면 역사적이고 고상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풍속소설이었을 것이다. 본인 삶과 같으니 얼마나 더 재밌었을까. 이동진은 책의 목적성을 경계했다. 읽는 행위가 부담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도 문학보다 비문학을 더 읽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문학을 읽다보면 읽는 것 자체의 재미를 알게 된다. 유튜브보다 재밌는 책! 그럼그럼.

 

[20세기 초반 쇼 비즈니스의 세계를 엿보다]
작가와 작품은 떼 놓을 수 없는걸까. 작가로 성공한 피츠제럴드는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사교계 생활을 탐닉하다가 작품의 연이은 부진으로 알콜 중독자의 길에 빠졌다. 그런 작가의 삶을 반영하듯 단편선에 실린 소설들은 사교계와 배금주의를 찬미하면서도 경멸한다. 

 

[머리와 어깨]

가장 좋았던 소설은 <머리와 어깨> 다. 이성을 찬양하던 철학 대학원생과 공부와는 거리가 먼 쇼걸이 사랑에 빠진다. 돈을 벌기 위해 남자는 공부를 때려치고 재능을 살려 곡예사가 된다. 반면 임신과 출산 후 집에만 있게 된 여자가 무료함에 쓴 소설은 일약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둘은 각자의 성장기와 전혀 다른 상대방의 세계에서 성공을 거둔다. 아이러니하면서 희망적인 소설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우주를 알게 되고, 또 그게 내 삶의 일부가 된다. 머리를 뜻하던 남편과 어깨를 뜻하던 부인의 입장이 뒤바뀌고 주변인들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진실은 남편과 아내만이 알고 있다. 이런 결말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이 젊은 부부는 서로를 '머리'와 '어깨'라는 별명으로 부른다고 한다. 타박스 부인의 머리가 문학과 정신적 소양을 담당하는 한편, 유연하고 민첩한 남편의 어깨는 가정의 재정에 기여한다는 뜻임에 틀림없다. (p.87)

 

[작가란 무엇일까]

한강의 소설도 그렇고, 양귀자의 소설도 그렇고, 피츠제럴드도 그렇고, 문학을 쓰는 창작가에게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엿보인다. 즐겁게 쓴다기 보다, 쓸 수밖에 없어서 악착같이 쓰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작품은 태가 난다. 단편소설이란 보이는 이야기와 그 속에 숨겨진 비밀 이야기의 다양한 방식의 조합이다. 라는 말처럼 이 메세지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진다. 서문에 피츠제럴드가 작가를 꿈꾸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다. 이 말들이 굉장히 와닿았다. 

그저 되고 싶다고 해서 작가가 된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단다. 네게 써야 할 이야깃거리가 있다면, 가령 어느 누구도 이제껏 얘기하지 못한 뭔가가 있다면, 너는 아마 너무 절박한 나머지 지금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해낼 방법을 찾게 될 거야. ...글을 쓴다는 것은 아주 고독한 작업이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한 번도 네가 이 길에 뛰어들기를 바란 적이 없단다. 하지만 네가 정말 하고 싶다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익히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p.1)

 

피츠제럴드가 발표한 단편소설은 160개에 달한다. 글을 팔아서 먹고 사는 매문가였기에 그의 작업은 예술이라기보다 노동에 가까웠을 수 있다. 작품마다 기복이 있고, 성공하지 못한 소설도 많다고 하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쓰는 행위는 작가를 단련시켰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