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2025

혼모노(2025) 리뷰 ⭐️⭐️⭐️⭐️

방황하는물고기 2025. 11. 30. 11:57

 
[자본이 없어도 넷플릭스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소설의 힘]
박정민의 추천사가 강력하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누군가는 "이래서 넷플릭스 본다" 라고 답했지만 나는 박정민의 말에 공감했다. 텍스트일 뿐인데 눈과 귀를 현란하게 사로잡는 영상 매체만큼 몰입감 높다. 거기다 단편 소설이라  스토리가 단순하고 읽기가 쉽다. 여흥의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그러면 넷플릭스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아르헨티나 소설가 리카르도 파글리아는 '단편소설이란 보이는 이야기와 그 속에 숨겨진 비밀 이야기의 다양한 방식의 조합'이라고 한다."(p.352)

 
성해나의 소설은 이 두 가지의 균형이 완벽하다. 한국 문화를 전혀 모르는 한국계 미국인이 태극기 집회에서 한국인의 따스함을 느낀다는 보이는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재밌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과 인정의 과정을 보여주는 비밀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예시로 든 <스무드> 뿐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 소설이 그렇다. 레이어가 아주 곱고 촘촘히 들어가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재밌지만 가까이서 보면 세태 풍자와 메시지가 가득하다. 성해나의 소설은 마치 쇠라의 점묘화를 보는 듯 하다.
 
[혼모노]
박정민은 이 책이 영화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글만으로도 몰입력이 강한데 시청각 재료를 더하면 파급력이 더 클 것 같다는 얘기일 것이다. 혼모노는 그 대표격인 소설이다. 맨발로 작두를 타는 늙은 무당의 모습을 볼 때는 내 발바닥이 시리다. 그러면서도 스토리적 몰입을 떠나 나는 '혼모노'로 살아가고 있는지 묻게 된다. 작품에서 혼모노를 가르는건 신기의 여부, 상징적으로는 할멈이 어느 무당에게 들렸는지의 여부다. 할멈은 늙은 무당을 떠나 더 신기있는 신애기의 몸으로 갈아 탄다. 늙은 무당은 다시 혼모노가 되기 위에 할멈에게 애원도 하고 신애기에게 싸움도 걸어본다. 그러나 작품 막바지에서 늙은 무당은 신기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굿판을 벌인다. 그리고 스스로를 '진짜 가짜' 라고 칭한다.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장심이 붉게 젖어든다. 무령을 흔든다. 잘랑거리는 무령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가볍구도 묵직하게." (p.153)

 
 
진짜란 어렵다. 플라톤은 진짜란 현실 너머의 이상계에만 존재하며 그것을 이데아라 불렀다. 본성에서 떨어질수록 모방품이다. 진리에서 멀어질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DNA적으로도 태초에 있던 무언가의 모방의 모방일 뿐이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취향, 모두 여러 곳에서 짜집기된 누더기진 모음이다. 그럼에도 누구나 진짜가 되고 싶어한다. 유일하고 순수하며 진실한 존재.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걸 알기에 더 갈망한다. 늙은 무당이 스스로 벌이는 굿판은 이상하게도 희망을 준다. 진짜가 되기에 실패했다고 해서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짜 중에 진짜가 되면 되는 것 아닌가. 

성해나도 글을 쓰는 시간보다 글을 쓰려 텅 빈 모니터 화면을 노려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한강도 그렇고, 성해나도 그렇고 좋은 작품를 만드는건 긴 인고의 시간과 감내가 필요하다. 혼모노인 사람이 좋다고 생각했다. 혼모노가 되려 노력하는 사람도 좋다. 노력의 흔적이 보이는 사람들. 부분적인 가짜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혼모노를 개척해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