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2021)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까?]
우리는 운명의 실에 맞춰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걸까? 아니면 나의 선택에 따라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는걸까?
어려운 선택을 내리고 나면 그게 최선이었을지 후회가 된다. '나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생각하면 내심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있었지만, 책방에서 이 책을 고른 진짜 이유는 '나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라는 답을 듣고 싶어서였다. 애인에게 이별을 고한 다음날이었다.
[자유의지를 철학적으로 해부하기]
자유의지는 그 선택이 '인간에게 달려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증명이 어렵다. 미지의 절대자가 있을수도, 물리학적으로 세상이 그렇게 설계됐을수도 있다. 가능성에 근거를 둔 주장을 반박하는 건 어렵다. '그럴 수도 있잖아?' '아닐 수도 있잖아?'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저자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있다는 주장을 취하지는 않을거라고 못을 박는다. 물리적 신경 사건으로 인간 활동을 묘사하는 유물론적 관점으로 자유의지가 없다는 주장을 옹호하는 논증들을 철학적으로 반박한다.
[결정론 반박하기]
반자유의지 논증의 핵심 사상은 결정론이다. (p.27) 결정론이란 모든 물리적 사건은 이전 사건들에 의해 전적으로 야기된다는 견해이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당구공을 쳤을 때 하나는 12인치, 하나는 12.1인치를 갔다면 한 개의 당구공이 0.1인치를 더 가도록 야기된 요인이 분명이 있었을 것이다. 힘을 더 줬다든지, 공이 더 가벼웠다든지 말이다. 이런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것은 130억 년 전 빅뱅때부터 예견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결정론이 참이라고 가정하고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걸 '고전적 반자유의지 논증'이라고 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법칙이 등장하고 모든 것이 확률적이라는 사실이 들어났다. '무엇이 아마도 일어날지, 혹은 일어날 수도 있을지'만 확률적으로 따지는 것은 결정론에 위배된다. 따라서 고전적 반자유의지 논증은 결정론이 참이라고 믿을만한 타당성을 잃는다.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양자역학이 나오기 전에는 '양립가능론'이 있었다. (p.69) 이는 결정론이 참이라도 자유의지와 양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사상가는 흄이다. 흄은 자유의지란 '당신이 하고자 원하는 것을 했다' 라는 의미이다. 빅뱅 이후의 물리법칙에 따라서 인과적으로 오늘 애인과 헤어졌더라도, 그 결정이 내가 원한 것이라면 자유의지를 시행한 것이다. 따라서 양립가능론을 반박하고 싶다면 그 자유의지의 개념은 틀렸다고 주장해야만 한다. (p.73) 저자는 양립가능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다른 개념의 자유의지를 도입한다. 바로 '선결정 되지 않은 자유의지(not-predetermined free will, NPD 자유의지)'이다. NPD 자유의지는 결정론과 양립 가능하지 않다. NPD 자유의지는 이전 사건에 의해 내 결정이 야기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NPD 자유의지 존재 여부로 주제를 한정한다. 흄 방식의 자유의지는 명백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NPD 자유의지의 개념 정확히 하기]
저자는 자유의지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유의지는 우리의 '의식적 결정들'이다. 그 중에서도 '갈린 결정들(torn decisions)'에 해당하는 의식적 결정이다. 갈린 결정이란 당신에게는 거의 공동 최선으로 보이는 여러 옵션이 있어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확신감이 전혀 없다. 그리고 당신은 분열감을 지닌채 결정한다. (p.93)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때때로 우리는 분열감으로 시작하지만 잠시 동안 상황을 생각해 보고 여러 옵션 중 하나를 선호하는 이유들을 생각해 내고서는 더 이상 분열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경우, 갈린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선택해야만 한다. 종합하지면, 자유로운 결정이란 1. 선결정 되지 않았으며 2. 무작위 이지 않은 결정이다.
우리는 오직 특정 인생의 점들에서만 자유의지를 원한다. (p.97)
[결정론을 따르지 않는 또 다른 반자유주의 반박하기]
결정론의 옳고 그름에 구애를 받지 않는 반자유주의 논증은 아래 두 개가 있다.
첫 번째로는 무작위-또는-선결정 논증이다. 이 논증은 아래 같은 철학적 접근으로 전개된다. 우리의 결정은 둘 중에 하나이다. (1) 내 결정은 이전 사건들에 의해 야기되었다. (2) 내 결정은 이전 사건들에 의해 야기되지 않았다. (1)일 경우 결정론에 해당하고, (2)일 경우 무작위 선택에 해당한다. 모두 나의 자유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불가능하다. 자유의지가 가능하려면 (1) 그 선택은 이전 사건들에 야기되지 않았으면서 (2) 무작위가 아니어야 한다. 저자가 정의한 NPD 자유의지와 같다. 저자는 여기서 (2) 무작위 선택의 헛점을 파고든다. 그 선택이 전적으로 무작위 했을지라도 선택을 내가 내렸다면 그것은 NPD 자유의지이다. 의식적 결정은 곧 신경 사건이다. 신경 사건은 당신의 몸에서 일어났으므로 당신이 NPD 자유의지를 내렸다는 증거가 된다.
두 번째로는 과학적 논증이다. 우리의 행위와 결정들이 우리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적 사건들에 의해 전적으로 야기된다는 주장이다.
1983년에 나온 벤저민 리벳의 신경과학적 실험이 가장 유명하다. 리벳의 연구에서 피실험자들은 손목을 움직이려는 의식적 의도 약 0.5초 전에 준비전위가 발생했음을 알아냈다. 이는 당신이 행위를 수행할 때 행위의 물리적 원인들이 이미 작동한 후에나 의식적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당신의 자유의지는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논증이 준비전위가 우리 행위들의 산출에 어떤 종류의 인과적 역할을 한다고 그냥 가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한다. (p.135) 준비전위는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즉, 준비전위가 결정에 대한 원인이라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 또한 뇌의 특정 영역이 의식적 결정이 일어나기 7-10초 전에 활성화 되는 사례도 반박한다. 우리가 2분의 1초 이내에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적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만 뇌의 특정 영역이 의식적 결정 이전에 활성화된다면 NPD 자유의지가 항상 거짓이라고 할 수 없다.
[총평]
책에 따르면 자유의지가 없다는 논증은 신빙성이 없다. 이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충분한 증거 없이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기각할수도 없다.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말을 듣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그렇게 단언적으로 굴러가진 않는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중요한 선택을 내리기 전에 고민을 하고, 그 선택을 후회하고, 뿌듯해하고, 또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